굿바이 쇼핑

저자
주디스 러바인 지음
출판사
좋은생각 | 2010-04-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간의 생생한 기록!1년간의 소비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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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운명적으로(!) 동네 헌책방에서 만났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덥석 집어들었다. '생활 필수품(물론 '생활 필수품'의 범위는 논쟁적이다) 외에는 1년 동안 아무 것도 사지 않는' 이야기의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하다니 이런 멋진 우연이 다 있나. 

물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한 것보다는 감동이 덜하다. 솔직히 말해, 저널리스트인 동시에 활발한 정치적 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그와 파트너의 '쇼핑 안 하는' 이야기가 나에게 마음 깊숙히 와닿지 않았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원 낭비적인 자본주의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비판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선망보다 이 허무한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좀 더 사적이고 소박한 후일담이었다.


2004년 3월 7일 까페가 그립다

와인이나 커피를 소비하지 않게 되면서 인간 관계의 윤활유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푸념. 호오.

까페라는 것은 도시에서 그 어느 것도 대신 줄 수 없는 즐거움―일하기, 먹기, 읽기, 몽상하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기―을 제공하는 도시의 독보적인 문화시설이다. 즉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무얼 하는지는 볼 수 있는 공공의 사적 공간이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힐긋 쳐다보거나 술집에서 낯선 사람한테 속내를 털어놓거나 혹은 밀실에서 섹스를 하거나, 도시에서 익명의 친교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친근한 타인들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 것은 안전하면서도 고독하다. 술집에서의 섹스와 비교하면 불감증 수준이다. 폴은 특별히 이런 주흥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도시 출신이 아닌 그는 집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시골 관습을 도시로 옮겨온 것에 반가워했다. 하지만 나는 벽쪽의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과 어울리며 커피를 홀짝거릴 그날이 다시 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93-94)


4월 29일 자발적 가난의 문제점

내가 채식을 시도하면서 느꼈던 의문과 비슷하다. 개인적인 해결책은 영향력의 범위도 개인적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인 것과 경제적 · 사회적인 것을 따로 떼어놓고 싶지도 후자가 실질적인 반면 전자는 하찮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이 두 가지 영역을 통합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내가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내 기분을 풀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다. 사지 않는 것이 해결책의 하나이긴 할까? 근데 무엇의 해결책이란 말인가? (132)


4월 30일 욕망할 수 있는 자유

저자가 이야기하는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용어로 바꾸어 읽으면 좀 더 재미있어 진다. 

나의 일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권리가 있다는 듯이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넌더리를 낸다. 동시에 나는 좌익이든 우익이든 우선 사람들에게 욕구하지 말라는 말부터 하는 그런 운동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동참하기 싫다. 나는 그 신발가게의 그 여자아이들에게 그런 하찮은 구두를 원하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밤새 춤을 추고픈 그들의 섹시한 꿈을 포기하라고 감히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꿈은 구두의 밑창에 그리고 영혼에 한 땀 한 땀 수놓여 있다. (137)


9월 27일 아고라에서 오이코스로

이제 우리는 안보를 위한 소비라는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백악관과 가정용품 매장의 세일즈맨들은 실제의 테러와 조작된 테러에 대한 환상으로 우리의 구매를 부추긴다. 제대로 된 물건을 갖춰놓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불확실과 혼란이 닥쳐와도 끄덕없다. 모두 손실보장이 되어 있다.

물건의 구입을 통해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안일한 태도는 그만큼 위험에 취약해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쇼핑을 안 하는 것은 역설적인 효과를 낳는다. 양말과 양념의 재고가 바닥나고 한계를 유보해주던 완충물이 사라지면서, 나는 필요한 것은 이미 전부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은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보다는 덜어준다. 미래에 대한 나의 청사진에다 지난 9개월 동안 확연히 겪었던 친구들의 친절을 더하고 새로 산 물건을 제하여 보라. 그러면 요새의 두께는 상당히 줄어든다. 올 들어 더 적게 가진 나는 지난 10년 세월보다 재정적으로 더 안정감을 느낀다. (279)


11월 28일 사유재산

오. 그렇군. 소유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겠구나. 그 생각을 못 해봤네. 

마르크스는 말했다. "사유재산 때문에 멍청하고 둔감해진 인간들은 물건을 소유할 때만 비로소 자기 것이라고 여긴다. 모든 육체적, 지적 감각은 소유의식에 모든 자리를 쉽게 내주었다." (339-340)


다 읽고나서 보니 미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빌 브라이슨의 애정과 조롱이 (함께) 넘치는 에세이들이 묘하게 겹친다. 미국 문화의 근원적인 가치를 파헤쳐 비판하는 동시에 '꿈의 나라'인 미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또한 숨기지 않는, 그래서 자신의 국가가 가질 찬란한 미래에 대해 한 치의 의심없이 확신하는 태도가 공통적이다. 그래서 비미국시민 독자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건가. 흠.





Posted by 소년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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