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2023. 1. 12. 08:33

"술이 뭔데요?"

"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시지요." (1:384)

 

당신에게 적의가 없다 하더라도, 고생해 가며 저런 성벽을 쌓은 자들의 눈 앞에서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건 분명 무례한 일일 거요. (1:495)

 

물론 도깨비들은 우연의 주관 하에 어쩌다가 만들어낸 작품이라 해서 그 딱정벌레를 폄하하지는 않았다. 도깨비들의 속담에 따르자면 '길에서 돈을 주우려면 최소한 발 아래는 살펴야 하는' 것이다..... 행운도 그걸 찾아 다니는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행운이 노력하는 자의 위대함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는 말도 된다. (2:105)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 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2:123)

 

네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그 '남성미'를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남자들에게 '남성미에 대한 찬사와 존경'이라는 웃기는 대가를 지불하고 나서라도 남자들에게 수컷 역할을 맡겨야 할 만큼 원시적이라는 사실에 고마워하도록 해라! (2:160)

 

혼인 제도는 수컷에게 이 위험을 분담하게 하는 제도다. 즉 먹이를 구해오고 적대적 환경에 맞서 투쟁하는 등의 역할을 남자가 담당함으로써 보다 안전한 재생산을 꾀하려는 제도가 우리의 혼인 제도다. 이것은 이를테면 어미와 새끼라는 기본적인 가족 구조에 수컷이 편입된 형태라 할 수 있다. (2:160)

 

내가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에 내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자기 부정도, 자기 비하도 아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나'의 결여는 여전히 큰 문제였다. 왜냐하면 세상은 모두 '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2:389)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얻기 위해 그녀들이 한 일이라고는 태어나는 것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단지 존재하는 것 이상의 노력을 들여서 뭔가를 얻는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아스처럼 야심찬 여자마저도. (2:440)

 

숙원을 걸머지고 오만하게 걸어가는 거인들 (2:451)

 

거짓말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더 거짓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2:486)

 

우리가 다루어야 하는 것은 지도자를 잃고 주춤거리고 있는 대중이라고 가르쳐주더군요. 그리고 대중에겐 가장 큰 거짓말이 가장 훌륭한 설득 도구라는 것도 가르쳐주었습니다. 대중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다던가요. (2:493)

 

그는 그의 죄와 함께 살해당했어야 했다.... "만약 그가 행방불명되지 않았다면, 왕의 자리에게 살해당했다면,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왕의 죽음을 경험한 북부는 부활의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2:595)

 

재미를 아는 자는 힘의 노예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3:469)

 

예민함과 이해력은, 물론 상호보완적인 것들입니다만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당신을 압니다만 당신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4:13)

 

그녀의 진심을 오해할 수 없는 륜은, 그렇기에 진심의 무서움 또한 예민하게 느꼈다. 가장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의심하고 주저할 수 있는 능력은 진실에의 접근을 막지만 동시에 진실의 가혹함에서 사람을 보호한다. (4:42)

 

네 복수에 씨족들이 찬성해 줄 것인가를 걱정하지는 마라. 어떤 자들은 군자연하며 너에게 씨족들은 네가 살아남아서 다시 씨족을 번성시키기를 원할 거라고 말하겠지. 헛소리다. 죽은 자는 죽은 자다. 그런 말에는 늙은 자와 죽은 자를 우상으로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삶을 무서워하는 나약한 것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배어있다. 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거라. (4:164)

 

의문 없는 생이 생일까?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설명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우리의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것, 혹은 그 지혜로운 자가 사기꾼이라는 것. (4:227)

 

토끼가 표범에게 불살의 도덕을 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토끼도 그 말에는 웃을 겁니다. 저는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살라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죄입니다. 자기는 약하니까 표범에게 먹혀야 된다고 믿는 토끼입니다. 토끼는 자신을 부정의 대상이 아닌 긍정의 대상으로 바꿉니다. 표범보다 약한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자신을 선택하는 대신 표범보다 작아서 잽싸게 토끼굴로 뛰어들 수 있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자신을 선택합니다. 도망치는 토끼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습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두지 않으려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세상에서 완전히 긍정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상에게 제한과 족쇄를 두는 것이 죄입니다. (4:334)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가는 자를 조심하라...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는 자기 부정에 빠지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완성하려면, 그것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어야 하니까요.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순간 그 자의 인생은 완성되지 못한 것, 부족한 것, 불결한 것, 경멸할 만한 것으로 전락됩니다. 이 멋지고 신성한 생이 원칙적으로 죄를 가진 것이라는 판결을 받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 자는 다른 사람의 인생마저도 그런 식으로 보게 됩니다. 자기 인생을 뭐라고 생각하건 그건 그 작자의 자유입니다만,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그렇게 보면 문제가 좀 있지요. (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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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마시는 새

2023. 1. 12. 07:05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습이 엉터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정말 엉터리일 경우에도 무익합니다. (1권:67페이지)

 

"규리하 공, 그런 부당한 조건을 걸어서 당신을 존중하려는 사람을 곤경에 빠트리는 일은 바르지 못합니다. 왜 성의를 가지고 당신을 대하려는 사람을 괴롭힙니까. 당신의 조력자에게 불가능한 일을 부탁하여 그를 좌절시키는 것이 재미있지도, 당신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을 텐데요." (1:186)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한계를 가진 사람입니다. 내 도움을 얻고 싶다면 우선 내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십시오. 그런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무수한 바보들처럼 굴지 마십시오. 그런 바보들이 오해를 만들어 내고, 그런 바보들이 세상이 원래 각박한 것인 양 착각하게 만듭니다." (1:186)

 

산공부사가 아는 도르는 자신의 작위를 사랑했다. 그것은 명예욕이나 권력욕과 달랐다. 명예욕이나 권력욕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도로에게 타인은 필요없었다. 도르는 자작으로서 행동하고 사고하는 것을 즐겼을 뿐이다. (1:198)

 

종족이나 성별, 부모나 고향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것들은 그냥 받아들여야 해. 그것들이 주는 이익과 마찬가지고 손해도. 그런 손해들에 괴로워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그 손해를 줄이거나 손해를 이익으로 바꾸는 일을 생각하는 쪽이 낫지. (1:210)

 

지멘은 고민에게 시간을 나눠 주진 않았다. (1:260)

 

상냥함의 이면에는 간혹 거론키 어려운 오만한 감정이 숨어 있는 법이다. '상냥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깔보는 마을' (1:432)

 

보통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과 함께 늙어 가지만 교사들은 항상 젊은이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가장 전통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혼자 늙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느낌과 싸워야 하는, 하지만 또한 자신의 정신은 전통에 묶어 두어야 하는 교사들에게서는 언제나 엉뚱한 시대를 표류 중인 조난자의 냄새가 난다. (1:472)

 

불쌍한 사상적 난봉꾼이에요. 난봉꾼이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듯 제이어는 이 학문, 저 사상을 집적거리죠. 하지만 난봉꾼이 진짜 사랑을 못찾듯 제이어도 자기를 확 불태울 분야를 못 찾았어요. (1:496)

 

"발목에 밧줄만 단단히 묶여 있으면 벼랑에서도 뛰어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죠. 제이어가 그래요. 제이어의 밧줄은 우습게도 자기가 반듯이 실패한다는 믿음이에요. 실패할 것이 뻔하니까 아주 미친 짓이라도 해 볼 수 있다는 거죠." (1:496)

 

"'다른 사람은 감히 못할 일이지만 나는 해도 돼. 나야 원래 실패하는 놈이니까 상관없잖아?' 이거죠. 그리고 실패에 좌절하는 척하면서 다른 실패 거리를 찾아 나서죠. 이번에 제이어가 찾아낸 실패 거리는 제국 멸망이에요." (1:498)

 

우리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어요. 어른들은 나가들이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인 양 말했지요. 하지만 우리를 다스리는 것은 나가 황제였죠.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어요. 우리는 모순을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가르쳐야 했던 세대에요. 어른들은 앞뒤가 안 맞는 말만 하니 별도리가 없잖아요. (2:193)

 

친구는 그런 거잖아요? 오래 사귈수록 더 서로를 잘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실에 감사하는 것. 그것은 참 멋진 일이지요. (2:389)

 

"세상에는 반드시 오는 것이 있어. 숙취와 정의의 실현이지." (2:536)

 

어떠한 합리적 이유도 없이 그저 힘을 보여 주는 과시욕은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브릭 자작도 자신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 능력자인지 궁금해졌다. 이런 심리는 모든 건전한 지배자를 망가뜨리는 병이자 안전한 치유법은커녕 적절한 예방책도 없다. 브릭 자작의 초기 증세는 감동적인 연설로 나타났다. (3:88)

 

그는 짐에게 동의하지 않았다. 아마 끝까지 그럴 것이다. 지알데 락바이는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는 지금 짐을 도울 것이다. 잠시 입을 닫은 채 이 전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고, 전투를 끝낸 다음 다시 짐에게 반대할 것이다. 반대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도울 것이다. (3:172)

 

'어떤 사람의 주변에서 그가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라는 말이 많이 들릴수록 그 사람은 사는 것이 답답하지. (3:292)

 

"비밀스러운 책이나 수수께끼, 비결, 전설 따위에 매달리는 것이 치졸하는 생각을 내가 왜 못했는지 궁금하군. 그것은 인생을 우습게 만들길 좋아하는 자들의 태도야. 마법의 말 한마디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버릴 수 있다는 식의 나태함과 몽상이지. 이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진작에 알아차렸어야 하는 일이야.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잖나." (3:369)

 

"산다는 것은 끝이 없는 싸움이야. 모든 적을 일격에 거꾸러뜨리는 무적의 무기 같은 것이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을 쉽게 만드는 최후의 비결도 없어. 그런 것을 바라며 물러나는 것 자체가 이미 싸움에서 지는 것이야. 칼을 움켜쥐고 한 발 더 걸어 나가는 것이 낫지." (3:369)

 

자네는 사악한 자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선입견에 빠져 있군. 그것도 젊은이의 특징이지. 돈은 돈이고 품성은 품성이야. (4:433)

 

옛날 이야기만 하는 노인에게 젊은이들은 짜증을 내지만 절대로 자신의 것이 될 리 없는 것에 사람이 무관심한 것은 당연하다. (4:487)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자들이 영광을 누리고 진짜로 일을 한 자들은 세금 도둑이라는 평을 들어야 제대로 된 정치지. (6:13)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를 사랑할 두 사람은, 바꿔 말하자면 서로의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없이 무슨 짓이든 서로에게 할 것이다. (6:77)

 

우리 시대는 우리 것이야. 그리고 우리는 우리 시대의 것이지. 그 둘은 함께 사라질 거야. 그걸 인정하니 못하는 자들에게서 나는 죽음에 대한 케케묵은 기만을 발견해.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굴고 싶어하지. 그래서 시대의 단절이나 변화를 견디지 못하는 거야. 우리 시대가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6:101)

 

지키멜 퍼스는 만인을 통합하여 지배하는 제국이 없어도 사람들은 서로 잘 어울려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키멜은 왕국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시오크 지울비는 만인이 동의할 수 있는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오크는 유료도로당이 여행자들의 목적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풍요로웠던 시대의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6:116)

 

받아들이는 쪽이 진담으로 받아들였다면 그건 진담이다. 그리고 의도가 있다. 그 추악한 자는 듣는 자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이길 바라면서 그런 말을 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담이다. (6:408)

 

시대의 급류에서 빠져나와 강변에 오른다. 그곳에서 젖은 몸을 말리는 동안 도통 기다릴 줄 모르는 급류는 그를 내버려두고 멀어진다. 아이저 규리하에게 일어난 일은 그럿 것이었다. 그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괄하이드 규리하는 하얀 수염을 흩날리면서도 시대의 급류를 앞지를 듯이 달려갔고 죽는 순간까지 그러했다.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신이 어떤 시대에 속하느냐의 문제다. (8:256)

 

승리도 패배도 이기려고 노력한 후에 얻는 것이 가치 있습니다..... 승리나 패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8: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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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뭐라고 하던가요?"

"우리가 신을 믿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군. 신은 자기를 안 믿는다고 화내는 졸렬한 존재가 아니래. 삶이 귀중하고 풍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게 중요하지. 삶을 소중히 여기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래.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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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매잡이>

2016. 9. 19. 09:02

실수였다. 그것은 주인공이 미처 어디를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도 알기 전에 당해 버린 실수였다. 하지만 그 실수는 물론 주인공 자신의 책임은 아니었다. 그 실수는 주인공의 조심성과는 상관없이 어차피 그를 찾아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소문의 벽> (74)


언제나 망설이기만 하고 한 번도 스스로 행동하지 못하고 남의 행동의 결과나 주워모아다 자기 고민거리로 삼는 기막힌 인텔리였다. 자기의 실수만도 아닌 소녀의 사망사건을 자기 것으로 고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의 양심을 확인했다. 그리고 관념화한 하나의 사건을 순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되씹음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는 이상한 방법으로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병신과 머저리> (212)


시류를 좇아서 사는 사람들은 그 시류에 맞춰 생활을 잘 요리해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그 시류에 민감하고 영리하게 적응하는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며 스스로 만족한다.

<매잡이>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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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마초, 김훈

2015. 10. 28. 16:12



라면을 끓이며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5-09-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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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이 없는 바다에서 정규 항로를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뒤집히고 침몰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원인과 배경이 불분명한 사태는 망자의 죽음을 더욱 원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공허한 것으로 만든다. 망자들이 하필 불운하게도 그 배에 타서 죽음을 당한 것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은 아무런 정당성의 바탕이 없이 우연히 재수 좋아서 안 죽고 살아 있는 꼴이다. 삶은 무의미한 우연의 찌끄레기, 잉여물, 개평이거나 혹은 이 세계의 거대한 구조 밑에 깔리는 티끌처럼 하찮고 덧없다. 이 사태는 망자와 미망자를 합쳐서 모든 생명을 모욕하고 있고, 이 공허감은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발적이라는 공허감, 보호받을 수 없고 기댈 곳 없다는 불안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허무주의로 몰아가고, 그 집단적 허무감은 다시 정치적 공략의 대상이 되고 있다. (171, 세월호)


나는 모든 죽음에 개별적 고통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값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명과 죽음은 추상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일회적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다. 

그래서 한 개인의 횡사는 세계 전체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고, 더구나 그 죽음이 국가의 폭력이나 국가의 의무 불이행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이 세계는 견딜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인데, 이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가 전체주의다. 이 개별적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도 위안이 되지 못하고 경제로 겁을 주어도 탈상은 되지 않는다. (176, 세월호)


여자들은 저 익명의 여성성을 자신의 실존에만 고유한 개별적 상황으로 바꾸어놓기 위하여 수만 년의 세월을 거울 속에 집중했다. 그것은 무덤 속에서조차 단념할 수 없는 여자들의 싸움이다. 지금 이 싸움은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의 존재가 언제나 보여져야 하고 언제나 휘발되어서 밖으로 번져나가야 한다면, 그런 삶의 하중을 견뎌내기란 어려울 것 같다. 언제나 휘발되어야 한다면, 그 휘발의 결과가 개별성의 자유일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런 의문은 화장을 향한 여자들의 집중된 열정 앞에서 완전히 무력하다. (235, 여자1)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들의 아름다움으로 화장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 여자들은 아플 때 아파 보일 자유와 지칠 때 지쳐 보일 자유와 나이 먹어서 늙어 보일 권리가 없는 것일까. (236, 여자1)

'사내의 삶' 을 살면서 보호의 대상으로서의 '여자' - '여성'이 아닌 - 를 타자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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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무엇인가

저자
슬라보예 지젝 지음
출판사
난장이 | 2011-01-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시대를 사유하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던지는 폭력에 대한 삐딱...
가격비교


"소환사의 탄생"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우리 내부의 폭력'에 대한 참고하려고 읽기 시작한 책. 내가 예상했던 문제 제기를 하는 책은 아니었으나 읽을만 하다. 지적인 자극도 되고. 



'테러와의 전쟁' 이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등등의 용어들 대신에 우리를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를 과연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12)

OMG... 정말 그렇다!


"미래를 그린 이야기는 대부분 일종의 '빅 브라더' 같은 존재를 등장시키지만, 내 생각에 그것은 독재에 대한 20세기의 관점이다. 지금 일어나는 독재는 새로운 형태로 가장하고 있다. 21세기의 독재는 '민주주의'라 불린다." (59)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 대해 언급하면서, 감독의 인터뷰 직접 인용


쿠아론의 영화가 말하는 불임은 이미 오래 전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진단한 바 있다. 니체는 서양 문명이 말인 末人, the Last Man, 즉 어떤 열정도 헌신도 없는 무심한 인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말인은 꿈꿀 줄 모르고, 삶에 지쳐 있으며, 어떤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오직 안락함과 안정성만을, 그리고 서로에 대한 관용의 표현만을 추구한다. "이따금 약간의 독을 마시고 유쾌한 꿈을 꾼다. 그리고 최후에는 많은 독을 마시고 유쾌한 죽음을 맞는다. 그들에게는 낮의 쾌락과 밤의 쾌락이 따로 있지만, 건강은 챙긴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해 냈어.' 말인은 이렇게 말하고, 눈을 깜빡인다." (59~61)


한나 아렌트가 옳았다. 이들은 바이런이 말한 숭고한 악마적 악의 화신이 아니다. 그들의 개인적 경험과 그들이 저지른 무시무시한 행동 사이에 막대한 간극이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내면의 삶에 대한 우리의 경험, 우리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거짓말이다 진실은 외부에, 우리가 하는 행동 속에 있다. (82~83)


자신이 본 것을 망각하고자 하는 데서 물신주의적 부인이라는 제스처가 나온다. "나는 안다, 하지만 내가 안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알지만,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따라오는 당연한 결과들을 완전히 떠맡기를 거부한다. 그래야만 마치 모르는 것처럼 계속 행동할 수 있으니까. (89)

이 세상의 멍청이들을 보는 새로운 관점.


주이상스(jouissance). 쾌락이 고통을 줄이고 쾌감은 늘리려고 하는 쾌락 원칙을 따르는 반면에, 주이상스는 고통마저도 감수하는, 혹은 고통 속에서 느끼는 쾌감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이상스는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즐김이다. (96)


언어적 폭력이 단지 2차적인 왜곡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폭력행위의 원천. (106)


반공산주의 전향자인 작가 아서 쾨슬러는 심오한 통찰이 담긴 말을 했다. "권력이 타락을 불러온다면, 그 역도 진실이다. 박해는 희생자들을 타락시킨다. 비록 그 방식이 보다 미묘하고 비극적이긴 하겠지만." (174)


무신론이라 하면 쾌락주의의 분출을 생각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무신론의 주된 특징은 모든 인간의 삶이 쓰디쓴 것이라는 자각이었다. 우리의 운명을 지켜보고 행복한 결과를 보장해주는 전능한 권위란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무신론자들은 현실 도피에서 즐거움을 얻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창조적으로 제 자리를 찾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는 가르침을 전개하려 애쓴다. 이 유물론적 전통은 매우 독특한데, 그것은 우리가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게 전개되는 운명에 완전히 내맡겨진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겸손한 자각과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개척해 나간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결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재난의 위협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지금, 이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시대에 더욱 필요한 태도가 아니겠는가? (197)


진정으로 용서하면서 동시에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수 혹은 정당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진 후 나는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며 과거의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범죄를 합당하게 처벌하는 일에는 뭔가 해방적인 요소가 있다. 나는 사회에 빚을 갚고 다시 자유로워지며, 과거는 더 이상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자비'의 논리는 반대로 훨씬 더 억압적이다. (용서받은 범죄자로서) 나는 영원히 내가 저지른 범죄에 시달림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 범죄는 '무효화' 되지 않았고, 소급해서 취소되지 않았으며, 지워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62)


인간을 처벌하는 제도(와 사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가장 핵심적인 논변은 다른 인간을 처벌하는 것이 오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사형)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가 그런 일을 할 권리가 있는가? 우리가 진짜로 그런 판단을 내릴 위치에 있는가? 이에 대한 최선의 대답은 이 논변을 뒤집는 것이다. 진정 오만하고 죄스런 일은 자비를 베푸는 특권을 떠맡는 것이다. 평범한 존재일 뿐인 인간이, 특별히 범죄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죄를 너그럽게 사하여줄 권리가 있는가? 오직 신만이,혹은 국가적 용어로 최고의 권세를 가진 자, 곧 왕이나 대통령만이 그 예외적 지위 덕분에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여줄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정의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고 죄가 있다면 처벌하는 것을 의무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신의 위치로까지 격상시키고 신의 권능을 참칭하는, 진정한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267-268)


궁극적으론 거대한 체계가 더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줄 뿐인 국부적 행위 (새로운 주체성이라는 다양성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같은 행위)에 참여하기 보다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더 낫다. 오늘날 진짜 위협적인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유사-능동성이다. 곧 '행동하라'는 요구, '참여하라'는 요구, 현재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감추라는 요구다. 사람들은 늘 개입하면서, '뭔가를 한다'. 학자들은 학자들대로 무의미한 논쟁에 참여한다. 진정 어려운 일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고 철회하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설사 그것이 '비판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침묵 보다는 참여와 대화를 더 좋아한다. 우리를 대화에 끌어들여서 우리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길한 수동성을 깨뜨려버리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유권자들의 기권은 진정한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날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공허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296-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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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년망고
,

Their spirit, <Zero to One>

2015. 2. 13. 15:07



제로 투 원

저자
피터 틸, 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
출판사
한국경제신문사 | 2014-11-20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제로 투 원》은 성공한 창업자 피터 틸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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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은 빌 게이츠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의 운 좋은 개인적 환경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고, 컴퓨터 실습실이 있는 사립학교를 다녔고, 폴 앨런(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이 어릴 적 친구였다. 하지만 우리가 '말콤 글래드웰'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글래드웰이 베이비붐 세대(1963년생)라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성공한 개인에 관한 책을 쓰면, 그들은 특정 개인의 환경이 갖는 힘이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설명하느라 더 큰 사회적 맥락을 보지 못한다. 베이비붐 세대 전체가 어릴 적부터 우연의 힘은 과대평가하고 계획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하도록 배웠다는 사실 말이다. 처음에 글래드웰은 '자수성가한 사업가' 라는 대중들의 신화에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설명은 한 세대의 전형적 시각을 요약해 놓은 것일 뿐이다. (94)


위대한 회사란 세상을 바꾸자는 작당에 다름 아니다. (141)

처음부터 나는 페이팔이 거래 관계가 아니라 단단히 엮인 관계가 되길 바랐다. 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튼튼해지면, 단순히 사무실에서만 더 행복하고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페이팔을 넘어 우리의 커리어에서도 더욱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우리는 실제로 즐겁게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채용했다.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특히 '우리'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신나게 생각해야 했다. '페이팔 마피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160)

페이팔의 초기 구성원들이 협업이 잘되었던 것은 우리가 모두 같은 종류의 괴짜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들 SF를 좋아했다. <크립토노미콘>은 필수 도서였고, 공산주의자들인 <스타트렉>보다는 자본주의자들인 <스타워즈>를 더 좋아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우리 모두 정부가 아닌 개인이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를 만드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이다. (163)

기업가라면 극도의 헌신적 문화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에 미적지근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신호일까? 그저 직업적인 태도만 취하는 것이 유일하게 이성적인 접근법일까? 
최고의 스타트업은 조금 덜한 정도의 광신 집단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이 놓친 무언가에 관해 광적으로 '옳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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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년망고
,



부의 기원

저자
에릭 바인하커 지음
출판사
랜덤하우스 | 2007-08-27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때문에 한국의 주식값이 폭락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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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패러다임의 이동 


케인즈, "경제학자들과 정치철학자들의 아이디어는 그것이 맞을 때나 틀릴 때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정말 세계는 조그만 차이에 의해 좌우된다." 

톰 스토퍼드, 「아카디아」, 당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의 모든 것이 틀렸을 때, 바로 그 때가 당신이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보여줄 최상의 시기다. 

1장 부는 어디서 오는가? 
 
정방기에 들어가는 물리적 기술은 그 자체가 곧 정방기는 아니다. 다시 말해 누군가는 정방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공장을 위한 사회적 기술은 그 자체가 공장은 아니다. 누군가는 실제로 공장이라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려면 누군가는 혹은 일단의 사람들이 물리적, 사회적 기술들을 개념이 아닌 현실로 바꿀 필요가 있다. 경제 영역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기업이다. 기업은 물리적, 사회적 기술을 함께 융합시켜 제품과 서비스라는 형태로 만들어 낸다. 

 기업은 그 자체가 디자인의 한 형태다. 기업의 디자인은 전략, 조직 구조, 경영 과정, 문화,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다른 요소들을 포괄하고 있다. 기업 디자인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별화 - 선택 - 증식이라는 과정을 거치며 진화한다. 이때 시장은 그런 디자인이 적합한지 중재자 역할을 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물리적 기술, 사회적 기술, 그리고 경제에서 변화와 성장의 패턴을 보여주는 기업 디자인, 이 세가지의 공진화 현상이다. 

왜 경제 영역에서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융합시키는 역할이 오로지 기업에게만 주어지는가? 물론 기업 디자인도 진화의 결과지만, 그 전에 경제 영역에서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융합시키는 도구로서 진화는 왜 기업을 선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러한 설명이 부재한 이상, 바로 경제 영역의 주요 주체로서 기업을 등장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으로 보인다. 왜 군대, 정부(의회), 시민단체, 가족 등 경제 영역의 다른 주체들은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융합시키는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가? 저자는 경제 영역에서의 '기업'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2장 전통 경제학 : 균형의 세계 

우리 모두가 인용하면서도, 제대로 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파레토 우위와 파레토 최적. 파레토 최적을 넘어서서 전체 효용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자유 시장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파레토는 거래에 동의하는 두 명의 사람이 있을 경우, 또 그들이 어리석지 않다면 그들은 윈윈 또는 최소한 한쪽이 이득을 보더라도 다른 한쪽은 손해를 안 보는 거래에만 관여할 것이고, 그 결과 참여자들의 전체 후생을 증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래는 후에 '파레토 우위(Pareto superior)' 거래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파레토는 자유 시장에서 모든 파레토 우위 거래가 소진될 때까지 사람들은 거래를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더 이상 거래를 했다가 누군가가 손해를 보게 되면 그 지점에서 거래는 멈출 것이고 시장은 하나의 균형점에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다. 나중에 경제학자들은 이 균형점을 '파레토 최적'이라고 불렀다. 파레토 최적은 어느 누군가에게 손해를 주지 않고는 더 이상 거래를 할 수 없는 그런 균형점을 가리킨다. 파레토 최적은 반드시 전체 그룹의 가치를 최대화하는 그런 균형점은 아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이익으르 위해 일부 사람들에게 손해를 주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그 그룹의 총효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거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효용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부 사람들의 후생을 줄이는 거래를 강요할 독재자도 없다면 파레토 최적은 우리가 자유 시장 경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3장 비판적 고찰 : 혼란과 쿠바의 자동차

 제2부 복잡계 경제학 

마르셀 프루스트,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경관을 보는 데 있는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얻는 데 있다." 

4장 큰 그림 : 설탕과 향료 

5장 동태성 : 불균형의 즐거움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에 대한 완충(buffer) 스톡 세 가지. 전략적 사고에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생산 프로세스의 주요한 요소들.

 첫째, 당신은 이 제품의 재고를 갖고 있다. 이 재고는 당신의 고객으로부터 불확실한 수요와 공장으로부터의 생산 사이에서 하나의 완충 역할을 한다. 만약 고객의 주문이 생산한 것보다 적으면 재고는 증가할 것이고, 반대로 주문이 생산보다 많으면 재고는 떨어진다. 수주와 배송 사이에는 약간의 시간 지체가 있을 수 있지만 재고는 거의 바로 조정이 이루어진다. 
 둘째,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한 생산 능력의 스톡이 있다. 재고가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면 당신은 공장에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할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공장은 100%보다 낮은 수준인 대개 80% 정도로 가동된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그래서 당신이 생산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공장안은 생산 라인을 좀 더 빨리 돌리고, 추가적인 근로자 교대를 이용하여 여유 라인을 가동시키거나 판매가 느린 제품 생산 라인을 판매가 빠른 제품 생산 라인 쪽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생산을 늘리는 데 걸리는 시간 지체는 몇 시간에서 수개월에 이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경우에는 조정이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따라서 재고 조정보다는 조정이 더 천천이 이루어진다. 
 셋째, 마지막 스톡은 장기적인 생산 능력의 총량이다. 일단 모든 생산 라인이 최대한의 속도로 가동되고 그 활용률이 100%라면 산출물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추가적으로 생산 라인을 설치하거나 공장을 더 짓는 것이다. 장기적 생산 능력을 새로 늘리는 일은 기존 생산 능력의 활용률을 높이는 일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새로 공장을 짓고 사람들을 더 고용하는 등의 일을 다 하려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6장 행위자들 : 심리게임 

인간 설득의 도구는 바로 이야기다. 

인간은 긴 방정식을 계산하는 데는 총명하지 않을지 몰라도 놀라운 이야기꾼이자 동시에 이런 이야기에 대한 경청자이기도 하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학습과학연구소 소장이자 예일대 인공지능연구소의 전 소장 로저 쉥크(Roger Schank)는 이해, 기억, 그리고 소통을 위한 우리의 정신적 과정에서 이야기가 중심적 역할을 함을 보여 주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말했듯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사회를 지배한다". 

7장 네트워크 : 오! 너무나 복잡한 거미집 

 우리의 정규적인 클러스터에는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사회적 네트워크 밖에서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에 연결해준다. 만약 우리가 근사한 구조를 가진 래티스 그래프에다 몇몇 임의적인 연결 고리들을 집어넣으면 양쪽 세계의 이익을 모두 얻게 된다. 

 흥미롭게도 우연히 알게 된 친구라는 아이디어는 무엇이 좋은 네트워크인지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반직관적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특정한 세계를 매우 잘 알면 그 사람을 연결이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와츠와 뉴먼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연결이 좋은 사람들은 접촉하는 그룹이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다. 누구에게나 말을 걸 수 있고 모든 계층과 환경에서 친구들을 선택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정말 연결이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8장 창발성 : 패턴들의 퍼즐 
9장 진화 : 그건 바로 저기에 있는 정글이다 


제3부 진화는 어떻게 부를 창출하는가 

10장 디자인 공간 : 게임에서 경제까지 

죄수의 딜레마. 로버트 액설로드는 이를 가리켜 '사회과학계의 이콜라이(E.coli, 대장균)와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생물학자들이 종종 박테리아균, 초파리 혹은 기타 여러 단순한 유기체들을 가지고 첫 실험을 한 후 본격적으로 인체에 적용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간단한 경제 모델을 사용하여 경제 활동에 대한 지식을 쌓게 된다는 이야기다. 

11장 물리적 기술 : 석기에서 우주선으로 
12장 사회적 기술 : 수렵, 채집민에서 다국적 기업으로 

13장 경제적 진화 : 빅맨에서 시장으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한 지는 경제나 정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사업 계획의 선택 과정에 정치가 개입한다는 것은 진화의 과정을 지체시키는 것과 같다. 통치자가 선택하는 시스템에서 적합도의 기준은 그 사회 전체 경제적 부의 증진이 아니라 통치자의 부와 권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국민의 창의성과 기업가 정신 그리고 연역적 실험 능력은 온통 통치자를 즐겁게 하는 데 집중되기 마련이다. 

 전통 경제학의 큰 업적 중 하나가 바로 시장의 선택에 따라 적응하면 그것이 바로 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복지를 향상시키게 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통치자 경제(통치자가 선택권을 가진 경제)에서 사업은 정치적 호불호에 따라 죽고 산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는 고객의 제품 선호도와 수요에 의해 사업의 성패가 결정된다. 통치자 경제에서는 통치자의 호주머니를 채우는 쪽으로 자원 배분이 일어난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는 경제적 효용이 극대화되는 방식으로 자원이 배분된다. 

 여기서의 의문은 두 가지. 첫째, 시장은 과연 경제적 효용으로만 사업 계획을 선택하는가? 통치자 경제를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역사적 사례와 논리적인 근거들은 통치자의 통제가 경제적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증명한다. 그러나 시장 경제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왜곡되지 않는 시장이란 없다. 정치가 경제에 개입한 지가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정치가 개입하지 않은 경제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완벽한 자유 시장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야 말로 복잡계 경제학이 전통 경제학을 비판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데 경제적 진화에 있어서 시장은 완벽한 선택 기제가 될 수 있나. 오로지 경제적 효용만으로 사업 계획을 선택하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둘째, 파레토 최적만이 우리가 성취할 수 있는 최선인가? 파레토 최적을 넘어서는 전체의 효용 증대를 위해 외부의 힘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손실입는 경제적 주체들을 보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최선의 결과가 아닐까? 앞에서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는 존재한 적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마도 경제는 항상 외부로부터의 영향력 하에 있어야 한다. 시장이 결코 스스로는 성취하지 못하는 최선을 위해서 말이다. 

14장 부의 새로운 정의 : 적합한 질서

제오르제스쿠-로에겐, 인간의 개인적 행복은 모든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우리의 모든 행위의 적합도 함수. 

그래도 웬만한 내용은 넘어가는데, 그 중에서도 정말 이해가 안되며, 억지스럽다고 느껴졌던 부분은 부의 기원이 '지식'이라고 우기는 바로 이 문단. 

 물리학에서 질서란 정보와 같다. 따라서 우리는 부를 가리켜 적합한 정보, 달리 말하면 지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보란 그 자체로는 효용이 없다. 반면 지식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그리고 특정한 목적에 부합될 수 있는 유용한 정보이다. 그렇다면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전통적 성장 이론의 창시자인 로버트 솔로가 옳았다. 부의 기원은 바로 지식이었다. 그러나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복잡계 경제학적 관점은 지식을 가설, 외적 주입, 경제학 경계 밖의 이해할 수 없는 과정으로 취급하기 보다는 경제학 내부의 가장 중심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물리학에서는 질서가 정보를 뜻하나? 물리학에서는 연구 대상 중 어느 하나에 대한 정보를 모두 획득했다고 해서, 그 대상이 질서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파악가능함'과 '질서정연함'의 의미는 직관적으로도 구별된다. 그리고 그 다음, 부를 창출하는 것은 정보 중에서도 적합한 정보, 즉 지식이라는 명제 또한 그 근거가 허약하다. 부를 창출하는 것은 물리적, 사회적 기술이나 사업 계획, 또는 이 세 요소 모두의 공진화 등 여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경제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바로 지식인가. 우리는 지식을 획득하기만 하면 경제적 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나? 아니면 방금 언급한 경제활동의 산물들이 바로 지식이라는 것인가. 
 책 제목이 '부의 기원'이다 보니, 단 하나의 요소로 부의 기원을 설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못해 이처럼 어이없는 논리적 비약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자를 굉장히 배려한다면 억지스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진화는 지식을 창출하는 기계, 즉 학습 알고리즘이고, 그 결과 부가 창출된다. 그래서 그 과정과 상호작용을 모두 배제시켜 본다면, 부의 기원이 지식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바로 이런 과정을 설명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제4부 기업과 사회에 대한 의미 

15장 전략 : 진화의 경주 

알프레드 챈들러, 전략이란 기업의 기본적인 장기 목표와 목적,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행동 경로, 그리고 그에 따른 자원 배분에 관한 결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전략은 본질적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전략을 개발하려면 자신이 미래의 어디에 있기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한다. 둘째, 전략은 바람직한 미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이 설정한 행동 경로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 

 애니 오클리의 이야기는 겔만이 동결 사건(하잘것없고 우연한 일이지만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예다. 복잡 적응 시스템의 비선형적, 동태적 성격은 비록 그러한 사건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역사의 경로에 나타나는 차이는 매우 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특별히 이 개념을 알고있지 않다 하더라도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등등의 상투적인 구절로 가끔 역사의 우연성과 경로의존성을 되돌아보곤 한다. 그렇다면, '어차피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결국 그렇게 되었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건 암묵적으로 (전통경제학적인) 시스템의 균형을 상정하는 것이겠군. 현재 시스템이 쓰고 있는 역사는 그 과정 속에서 벌어진 수한 하잘것없고 우연한 사건들의 상호작용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지켜낸' 균형의 결과일테니까 말이다. 

 전략은 서로 경쟁하는 실험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그리고 준비된 마음가짐. 
 
전략에 대한 진화적 접근 방법은 대안을 창출하고 대안을 열린 상태로 유지하며, 특정 시점에서 가능한 최대로 가능성의 나무가 무성해지도록 만드는 것을 강조한다. 대안은 가치가 있다. 진화하는 전략적 실험 포트폴리오는 경영진에게 더 많은 선택을 제공하며, 이를 통해 그것들 중 일부가 옳을 가능성을 높인다는 뜻이다. 진화는 사업 계획의 과임신 현상을 필요로 한다. 넘칠 정도로 충분한 사업 계획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어떠한 기업도 시장 전체에 존재하는 사업 계획의 다양성에 필적하지는 못하겠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오히려 그 반대 극단에서 운영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업마다 실행 중인 사업 계획이 하나 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사업 계획의 다양성에 관한 한 기업 스스로가 가장 최악의 적이기도 하다. 이는 탐색 및 혁신의 필요성과 활용 및 실행의 필요성 사이에 본질적인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방향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이는 또한 명확한 리더쉽과 방향 제시를 요구한다. 반대로, 진화적 전략은 산지사방으로 동시에 움직이면서 위험이 수반된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행에 관한 피드백 고리는 엄격하고 측정 가능하다. 사람들은 분기마다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전략의 진화에 관한 피드백 고리는 측정하기가 어렵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러 해가 걸린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중복을 싫어하지만 다양성은 그 정의상 중복, 중첩 및 잉여 능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운영 효율을 위한 드라이브는 필요하고 가치 있는 목표이기는 하지만 전략적 실험의 다양성과 내부적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 계획의 수 등을 감소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도 초래한다. 


현대 기업들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효율성'의 가치가 자칫하면 현재에 안주하고 혁신을 오히려 저해하는 경영 방식을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에 대한 진화적 접근은 산업의 혁신적 변화, 기업의 전략 변화는 오로지 단계적인 진화를 통해 이루어질 뿐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현실 세계에서 하룻밤 새의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사업 계획의 적합도 지형에서 '점프의 거리'를 고려할 때 우리는 위험, 관계 그리고 시간이라는 세 가지 차원을 고려해야 한다. 위험은 특정한 전략적 실험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불확실성과 개입의 비가역성 정도를 지칭한다. 관계는 사업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경험, 기술 및 자산으로부터 실험이 얼마나 멀리 또는 얼마나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가를 나타낸다. 시간은 실험으로부터 성과를 얻게되는 기대 시간을 말한다. 

16장 조직 : 사고하는 사람들의 사회 

 일반적으로 집행 작업은 복잡하고 순차적이며 동시적인 수많은 과정의 조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계층 구조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하여 탐색 활동은 대개 넓고 평평한 조직으로도 가능하다. 전략적인 실험의 구성을 보면 전체적인 차원에서 기본적인 조정은 이루어지지만 대개 소규모의 팀들로 구성되며, 각 팀은 동시에 자율적으로 탐색 활동을 벌인다.

 고위 경영층에서는 탐색 작업이 필요한 경우 계층 조직과 분리된 조그만 팀을 만들어 별도의 사무실에서 혁신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첫째, 만약에 모든 탐색 작업이 기업 상층부에 의해 운영되고 지원한다면 이른바 진화의 적합도 지형에서 특정 부분만 탐색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즉, 우연히 최고 경영진이 관심을 갖게 된 그런 경우에 한정된다는 이야기다. 둘째, 그러한 탐색 결과를 본 조직의 업무와 연결시키는 데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탐색 결과를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집행 부서와의 연계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는 매우 중요하다. 

17장 금융 : 기대의 생태계 

스톡옵션의 허상. 경영진은 실제 주가를 관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경영 전략이나 비용, 투자, 인력과 같이 기업의 수익, 이익, 자본 수익, 그리고 성장과 관련된 요소들을 관리한다. 경영진이 관리하는 수단을 통하여 기업의 경제적 가치 창출 능력을 제고할 수 있으나 주가에는 간접적인 방법 외에는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전통 경제학자들은 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경영진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의 기본적인 내용들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경영진의 성과를 주가와 연계시키는 것은 괜찮다고 하였다. 특히 장기적으로는 더욱더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현실 세계에서 가격은 가치와 항상 일치하지 않고, 그 차이가 상당히 클 수도 있으며, 오랜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물론 가격과 기본적인 가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고, 또 시장이 경영자의 경영 활동에 대해서 대략 감지하고 있으나 상관관계가 그렇게 밀접한 것은 아니다. 

18장 정치와 정책 : 좌우 대결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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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년망고
,

밀란 쿤데라, <커튼>

2015. 1. 28. 16:07



커튼

저자
밀란 쿤데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2-10-1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밀란 쿤데라의 펜끝에서 거대하게 울려오는 메시지 "당신은 왜 소...
가격비교


가볍지만 거대한 책. 쉽게 읽힐 것 같았지만 정작 읽기 시작하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되새기면서 천천히 넘기게 된다. 소설, 문학, 예술에 대한 거장의 이토록 담백하고 솔직한 통찰이라니.



어떤 인물에 관해서 모든 정보가 주어져야만 그 인물이 '생생하고 강렬하며' 예술적으로 '성공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처럼 실재적인 존재라고 믿게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소설가가 그를 위해 창조한 상황의 공간을 가득 메우기만 하면 된다. (94)


사회 운동, 전쟁, 혁명과 반혁명, 국가의 굴욕 등 역사 그 자체는 소설가에게 그려야 할 대상, 고발하고 해석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다. 소설가를 매혹시키는 역사란, 인간 실존의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뜻밖의 가능성들에 빛을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다. (97)


수백 가지 분야로 세분화된 과학으로 인해 분할되고, 철학에 버림받은 현대 세상에서, 소설은 인간의 삶을 전체로서 파악할 수 있는 최후의 망루로 남아 있다는 것을. (116)


반서정주의로의 개종은 소설가의 이력서라면 반드시 들어 있는 기본 항목이다.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진 소설가는 갑자기 거리를 두고 자신을 본다. 그러고서는 자신이 그렇다고 여기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이런 경험을 해 봐야 소설가는 누구나 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이 아니라는 점과, 이러한 오해는 너무도 일반화된 기본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24-5)


정치적 태도의 근거가 되는 것은 사상(너무나 연약하고 어렴풋한 그것!)이 아니라 덜 이성적이고 더 견고한 어떤 것. (173)


출생에서 죽음 사이를 잇는 선 위에 관측소를 세운다면 각각의 관측소에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그 자리에 멈춰 있는 사람의 태도도 변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이해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 이것은 분명하다. 아, 너무다 분명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오직 이데올로기적인 거진 증거들만 눈에 보인다. 실존적 증거들은 명백한 것일수록 덜 드러나 보인다. 삶의 나이는 커튼 뒤에 숨어 있다.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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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년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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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 앳 미」는 권력의 효과를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인내와 관용의 정도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권력은 나쁜 취향의 농담에 무골충처럼 웃게 하는 힘이다. 토끼고리를 싫어하는 피에르를 에티엔이 지정한 메뉴에 동의하게 만드는 힘이며, 오랜 친구가 에티엔이 두고 온 와인을 가져오겠다고 두 시간의 운전을 기꺼이 떠맡게 만드는 힘이다. 이 모든 것은 굴종이 아니라 '친절'과 '예의'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기에 교묘하다. 반면 더 이상 얻을 게 없는 친구의 약점에 대한 관용은 자꾸만 얇아진다. 허술한 기억력도 엄살떠는 습관도 참을 수 없는 단점이 된다. 

「룩 앳 미」는 수용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타인의 속성 앞에서 예스냐 노냐를 결정하는 메커니즘이 바로 권력이 작동하는 현실적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의 과정에서 거의 모든 인간을 갉아먹는 미세한 '전향'과 '변절'의 과정을 포착한다. (127)


더스틴 호프먼처럼 훌륭한 메소드 연기자는 아예 그 인물로 살고자 한다. 그러나 연기는 어디까지나 완벽한 모방에 불과하며 배우는 극중 감정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는 고전적 배우의 눈에 제2의 자아를 찾기 위한 메소드 배우의 몸부림은 감상적인 호들갑으로 보인 것이다. "배우들은 무대에서 표현하는 감정에서 거리를 둔 냉정한 테크니션이어야 한다" 라고 일찍이 설파한 철학자 디드로라면 올리비에 경에게 한 표를 던졌으리라. (238)

연결되는 글로, The New York Times에 제임스 프랑코가 기고한 "Why actors act out"과 The New Yorker의 "Is method acting destroying actors?" 참조


"우리는 외국어를 말할 때 좀 더 모호하고 거칠게 말하며, 때로는 모국어로는 털어놓지 않을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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