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와 어떻게

2014. 7. 5. 21:24

장애물이 앞에 나타났을 때, 사람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왜 이런 문제가 생긴거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이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을 찾고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에게 부과해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찾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개미는 먼저 "어떻게,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한다. 

개미 세계에는 "유죄"라는 개념이 전혀 없다.

"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까?" 라고 자문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일이 제대로 되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하는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인간 세계는 "왜" 라고 묻는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어떻게" 라고 묻는 사람들이 다스리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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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 2 26~1593). 16세기 영국 극작가



켄트  캔터베리에서 제화공 말로와 캐서린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564 4월에 태어난 셰익스피어보다 먼저 태어난 셈이다. 말로는 캔터베리의 왕립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케임브리지 대학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성직자의 미래가 예정된 행보였으나, 말로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환된다. 재학 이미 말로는 희곡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를 썼으며, 오비디우스와 루카누스를 역하는 창작 활동을 시작한다. 1587 말로의 석사학위 수여가 보류되는데, 그가 15851856년에 케임브리지를 떠나 가톨릭 신학교가 있는 랭스에 다녀왔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케임브리지 부재 기간 여왕에게 ‘유용한 봉사’를 했다는 추밀원의 개입으로 말로는 일단 혐의를 벗는다. 당시 ‘유용한 봉사’란 밀정 활동을 에둘러 표현하는 말이었다. 말로는 석사학위를 받지만, 성직 대신 극작을 택하여 런던으로 향한다.


말로가 1587년에서 1588 사이에 것으로 추정되는 ≪탬벌레인 대왕≫ 1부와 2부는 런던 로즈 극장에서 애드미럴 극단에 의해 공연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는 ≪파우스트 박사≫, ≪몰타의 유대인≫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말로의 런던 시절에 대해서는 편의 희곡들이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외에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토머스 키드, 로버트 그린, 가브리엘 하비 동시대 문인들이 기억하는 말로는 이단적 사고와 무신론에 빠져 있는 위험하고 난폭한 인물이었다. 말로는 필경 월터 롤리 경의 무신론 학파에 속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밀정 , 프랜시스 월싱엄 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1593 말로는 의문의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5 30 뎁퍼드에 있는 선술집에서 일어난 칼싸움에서 눈을 찔려 숨을 거둔 돌연사였다. 이는 토머스 키드의 증언에 따라 이단 혐의로 추밀원이 말로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후의 일이었다. 그는 진정 사소한 술값 다툼으로 인한 칼부림의 희생자였는지, 아니면 말로의 이단적 사상이 첩보라는 그의 ‘유용한 봉사’를 덮어버릴 만큼 정부와 질서를 위협하여 제거된 것인지 분명한 점은 없다.


말로는 불과 10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영문학사에 지울 없는 족적을 남긴다셰익스피어 가장 영향을 작가일 뿐만 아니라 두세 가지 작품의 부분적 집필자였다고도 추측되고 있다. 그는 파우스트, 바라바스, 탬벌레인 대왕, 디도와 같은 거인적 영웅을 만들어낸 것은 한계와 통념을 뛰어넘고자 하는 전복과 위반의 정신이다. 이러한 인물상은 말로가 살았던 르네상스라는 시대와도 무관하지 않다. 말로의 작품들에는 중세 기독교적 우주의 거대한 질서와 틀에서 벗어나 자아와 자유를 찾고자 하는 개인들의 투쟁, 도전, 좌절, 회의, 두려움, 절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말로는 약강 5보격의 무운시 양식을 희곡 양식에 부활시켜 존슨의 찬사처럼 ‘막강한 시행’을 통해 실제보다 거대한 인물상을 빚어낸다. 이들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자아를 찾아 비상하고 추락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의 영웅들에게서 최초의 근대적 인간상을 발견하는 것이며, 말로를 영국 근대극의 시초로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시대의 습작으로 생각되는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에서 미완의 서사시 《히어로와 리앤더》를 남기고 급사하기까지 극작기간은 겨우 6, 7년이며 희극의 수도 7편밖에 되지 않으나 모두가 강렬한 개성으로 가득 이색적인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베르길리우스 <아에네이스>에서 취재한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를 비롯, 독일 전설의 최초의 극화이며 도덕극의 전통을 계승한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적 생애>, 세네카풍 유혈비극의 잔혹한 무드, 마키아벨리즘, 멜로드라마적인 희극의 요소를 교묘하게 내포한 <말타섬의 유태인> 거쳐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 <에드워드 2> 와서는 영국 연대사극(年代史劇) 장르를 개인의 성격에까지 높여 극작가로서 놀라운 진보를 보였다.


말로의 가장 특색은 <탬벌레인 대왕> 대표하고 있듯이 청춘의 정열을 비극적으로 노래하는 무운시(無韻詩) 매력과 극적 박력을 지닌 웅장함에 있으며 개인의 내부에 깃들인 무한한 욕망(예컨대 정복욕(<탬벌레인>)·지식욕(<포스터스 박사>)·물욕(<말타섬의 유태인>)) 추구함과 동시에 운명이나 자아와의 내적 갈등을 힘차게 묘사하여 개성 존중의 신시대 정신을 고취했다는 점이다.


단명했기 때문에 극작가로서는 셰익스피어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으나 중세 연극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 영국 연극을 해방시키고 근세 르네상스 연극 확립에 기여한 공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짐 자무시의 <Only Lovers Left Alive>에서 존 허트가 크리스토퍼 말로를 연기한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말로가 사실은 뱀파이어로 현대까지 살아있다는 설정. 말로는 이브와 아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햄릿을 쓰기 전에 아담을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 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찾아보니 역시나 셰익스피어의 작품 일부를 말로가 쓴 것이 아니냐는 설이 있다고. 그리고 짐 자무시의 영화는 그 설을 좀 더 발전시켜 셰익스피어가 말로를 사랑했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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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 remember, others may hate you, but those who hate you don't win unless you hate them."

― Nixon (34)


고생이나 고통이라는 건, 그게 타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 인간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법이다. 특히 일반적인 종류의 노력이나 고통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심한 편이다. (60)


글을 쓸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언제나 컨디션이 좋을 순 없다. 오랫동안 뭔가를 계속 하자면 산도 만나고 골짜기도 만나는 법이다. 컨디션이 나쁠 때는 나쁜 대로 자신의 페이스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나가는 것도 중요한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무리하지 않고, 고개를 치켜들고 꾸준히 참고 해나간다면, 다시 조금씩 컨디션이 되돌아오는 법이니까.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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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말 맹렬하게 읽어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책을 엄청나게 사대고 있다. 딱히 가을이라 그런 건 아니고, 최근 회사에서 엄청나게 한가하기도 하고 퇴사 전에 책 쇼핑을 해놓아야 하기도 하며, 또한 읽고 또 읽을 수록 읽고 싶은 책이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니까. 


1. 존 르카레

방금 전까지 읽다가 잠깐 내려놓은 책은 존 르 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소설은 워낙 유명하지만 그 전에는 읽기 시작할 엄두를 못 내다가 결정적으로 게리 올드만이 조지 스마일리로 분한 그리고 친애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피터 길럼으로 나온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영화를 보고 덜컥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책을 사버렸다. 그러나 이건 이미 2012년 겨울의 이야기이고 올해 9월에나 읽기 시작했으니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룬 건 사실이다. 치밀하게 잘 쓰여진 스파이 소설 또는 스릴러 소설이 흔히 그렇듯이 만만하게 페이지가 넘어가지는 않는다. 앞 뒤로 계속 교차 참조해야하고 문장 자체가 만연체인데다가 번역이 조금식 어긋나는 부분도 있어서 정말 찬찬히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어쨌든 그래도 재미있으니까 지치지 않고 꾸준히 읽어나가고 있으며 주말에는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10월 첫째 주말에 LA행 비행기 안에서 읽으려고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를 알라딘에서 주문해두었다. 전자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표지 날개에서 존 르 카레의 양대 걸작이라고 하고 나머지 걸작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후자는 존 르 카레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2. 조정래와 최인호

추석 연휴에 아빠와 같이 읽으려고 조정래의 '정글 만리'를 주문했었다. 나는 예상한대로 포항 본가에서 있었던 추석 연휴 후반 내내 노느라 책을 펼쳐보지도 않았고 아빠는 엄청난 독서 속도를 보여주며 시리즈 세 권을 끝냈다. 덕분에 서울로 돌아오는 나의 짐 안에 '정글 만리' 세 권을 가지고 왔다. 내심 궁금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굉장히 흥미를 가지는 작가 또는 주제는 아니라서 정작 읽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아빠와 같이 읽으려고 주문한 책이니까 다 읽고 나서 감상평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테니까 너무 오랫 동안 방치해두지는 말아야지.

최인호의 '상도'를 읽었던가. 고등학생 때 아빠 책장에서 꺼낸 '길없는 길'을 순전히 지적인 허영심으로 꾸역 꾸역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 대해서는 정말 지루했다는 인상 말고는 아무런 기억이 없다. 어쨌든 그래도 꽤 필력있는 작가라고 들었고 아빠가 종종 언급하던 작가였는데 어제 갑작스러운 부고를 듣고 정말 놀랐다. 그래서 어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충동적으로 '낯선 타인들의 도시'를 집어들었지. 그러고보니 유작이네. 


3. 셜록 홈즈

Anthony Horowitz의 'The House of Silk'나 ACD의 'A Study in Pink'에 비해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는 속도가 잘 안 난다. 하루에 한 챕터는 읽어야 하는데 자꾸 미루게 된다. 초반부 old manuscript 가 너무 읽기 힘들어서 하루 하루 미루기 시작한 것이 쌓여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 읽기 시작한 건 한 달도 더 지난 것 같은데 반도 못 읽었다. 오늘은 꼭 한 챕터 이상 읽자. 

그 외에도 Sherlock Casebook, Sherlockian 등 흥미로운 책들이 나의 책장을 뿌듯하게 채우고 있다. 우하핫.


4. 런던

순서로 따지면 가장 시급한 독서 주제다. 왜냐하면 퇴사 직후 나는 런던행 비행기에 훌쩍 올라탈 예정이니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끝내고 나면 당장 이 주제에 돌입해야지. 어제 알라딘 쇼핑을 하면서 좀 살펴보았는데, 런던에 관한 책들은 참 많기도 하더라. 'Lonely Planet London'과 IDEO의 런던 여행책, '런던의 짧은 역사', '런던 스케치'가 다음주에 배송되어 온다. 도리스 레싱의 '런던 스케치'가 가장 기대된다. 그리고 닉 혼비를 한 번 다시 추적해 봐야겠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예술가들이 워낙 많아서 알랭 드 보통은 히드로 공항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기까지 찾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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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출판사
솟을북 | 2007-11-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좌절과 절망의 길에서 평온을 위해 떠난 여행기『먹고 기도하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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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은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는' 여정을 차례대로 담고 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이탈리아에서 먹는' 내용 뿐이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긴장을 완전히 풀고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는 일에는 소질이 없다. 미국은 오락을 추구하는 나라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나라는 아니다. 포르노에서 테마파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은 스스로를 계속 재미있게 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지만 그것이 순수한 즐거움과 같은 맥락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지구상의 누구보다도 더 많이, 오래 일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루카 스파게티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그걸 즐기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의견을 뒷받침하는 놀라운 통계 결과에 따르면 많은 미국인들이 집에서보다 사무실에서 더 큰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죽어라 일한 후에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주말 내내 파자마 차림으로 돌아다니며, 시리얼은 상자째 먹고, 가벼운 코마 상태에서 TV를 바라보는 것으로 소일한다. (물론 이것도 일하는 것과 반대이긴 하지만, 뭔가를 즐긴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98) 미국인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진단하는데 한국인들에 대해서는 어떨까? 웁스. 쟤네는 도대체 왜 사는거냐 하겠군. 


'벨 파 니엔티(bel far niente)', '빈둥거림의 미덕'은 이탈리아인들이 언제나 소중히 간직해 온 고귀한 개념이다. 그들에게 빈둥거림의 미덕은 모든 노동의 목표이자, 가장 축하해야 할 최종 업적이다.(99)

 

내 경우 쾌락 추구의 최대 장벽은 내 안에 뿌리 깊이 박힌 청교도적 죄의식이다. 내가 정말 이 쾌락을 누릴 자격이 있을까? 이것 역시 지극히 미국인다운 생각이다. 내가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는지 아닌지에 대한 불안감. (99) 웁스. 이것도 한국인들에게 완전히 해당되는 진단. 나와 같은, 저자처럼 부지런하게 사는 것도 아닌 주제의 '일꾼'들도 가끔 이런 죄책감을 느낀다. 


피제리아 다 미쉘 (Pizzeria da Michele). 난 이 피자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실제로 이 피자도 날 사랑해줄 거라고 믿는 환각 상태에 빠져버렸다. 나는 이 피자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거의 불륜이나 다름없는 연애를. 그 동안 소피 역시 눈물을 글썽이며 피자를 먹고 있었다. 그녀는 형이상학적 위기를 겪으며 내게 질문을 던져댔다.

"대체 스톡홀롬에서는 뭐 하러 피자를 만드는 걸까? 아니 스톡홀롬 사람들은 뭐 하러 굳이 음식을 먹는 걸까?" (125) 이게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이탈리아에서 피자를 먹어본 사람으로서 확신한다. 여기 못 가 본게 너무 아쉽지다. 그러나 줄이 너무 길었다. 흑.


"Parla come magni", '먹듯이 말하라'. 뭔가를 거창하게 표현하려고 애를 먹을 때, 적당한 말을 찾고 있을 때 해당되는 조언으로 로마 음식처럼 간결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라는 뜻이다. 대단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그냥 테이블에 올려놔. (136)


볼로냐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그곳에 머무는 내내 난 볼로냐 예찬가를 부르고 다녔다. 사랑스런 벽돌 건축물이 있고, 부유하기로 유명한 볼로냐는 전통적으로 '빨강, 부유함, 아름다움' 으로 불렸다. (153) 다음에 꼭 가보겠다!


※ 루이기 바르치니, 이탈리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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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7-24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소박한 의문과 해답으로 이루어진 무라카미 하루키식 심플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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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기묘하다면 기묘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다지 기묘하지 않은 일이겠지만, 내가 만든 음식을 식탁에 늘어놓을 때면 으레 뜻대로 안 되었거나 모양이 일그러진 쪽을 내 접시에 얹어 놓고 만다. 생선 같으면 반으로 나누어 머리 쪽은 마누라에게 주고 나는 꼬리 쪽을 먹는다. 이것은 딱히 내가 주부인 나 자신을 비하해서가 아니라, 단순하게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주고 싶은 요리사의 습성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일반적으로 '주부적'이라 여기는 속성 중 대다수는 반드시 '여성적'인 것과 동의어는 아닌 듯하다. 즉 주부적인 속성은 여자가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체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주부'라는 역할에서 빚어지는 경향 내지 성향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남자가 주부의 역할을 맡아도 많든 적은 간에 어느 정도는 '주부적'이 되는 것이다. (185-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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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시리즈 3 - 벌집을 발로 찬 소녀
  • 브루노 베텔하임, 옛 이야기의 매력
  • 데니스 루헤인, 미스틱 리버

<영화>
  • 마틴 스콜세지, 셔터 아일랜드 - 데니스 루헤인 원작
  • 라이언 존슨, 루퍼
  • 데이빗 핀처,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완전한 몰입!' 수준은 아니지만 요즘 꽤 열심히 읽고 보는 장르는 스릴러. 밀레니엄 시리즈의 끝을 향해 맹렬히 읽어나가고 있으며, 이를 끝내면 원서로 데니스 루헤인의 'Mystic River'를 시도해 볼 예정이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책을 읽는 과정은 매우 고단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하는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이라면 조금 수월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와 함께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Shutter Island' (한국에서는 황금가지에서 '살인자들의 섬'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를 마틴 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화한 작품을 보고 있다. 그 다음에는 조셉 고든 래빗의 '루퍼'와 데이빗 핀처 버전의 '밀레니엄 1편'을 보려고 한다. 


브루노 베텔하임의 '옛 이야기의 매력'은 영화 '판의 미로'에 대한 리뷰를 통해 알게되었다. 종교와 신화적 은유를 통해 현대 영화를 해석하는 작업에 대해서는 항상 흥미를 느끼는터라 이 책도 기대된다. '학문적 시도' 라고 말하는 건 너무 거창하지만 어쨌든 이 분야에서 조금씩 독서량을 늘려 나가야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문제는 게으름. 그래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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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빈스

저자
제스 월터 지음
출판사
영림카디널 | 2007-01-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6년 미국추리작가 협회 '에드거 앨런 포 상' 수상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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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괜찮다. 막연하게 제목만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히 헌책방에서 만나게 되어 읽게 된 책. 생각보다 괜찮고 흡입력있으며 적당히 어두우면서도 가볍다. 블로그의 독서 기록을 더듬어 보니 닉 혼비가 자신의 독서 일기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닉 혼비는,  '속도감과 따뜻함, 유머, 그 인물들이 살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세상에 대해 쓰고자 하는 시도를 교묘하게 숨길 줄 아는 글 (제스 월터, 『시티즌 빈스』)' 이라는 평을 남겼다. 공감한다. 그리고 카터와 레이건의 대선을 치룬 1980년의 미국과 현재의 한국이 교묘하게 겹쳐서 웃음이 난다. 


사람을 두렵게 하는 건 음모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불안감은 불확실성에서 생기는 것이다. 두려운 것은 눈송이 하나나 표 하나가 아니라 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알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한결 수월할 거라고 수도 없이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59)


"그 사람들과는 관계 없는 일입니다. 이건 우리들 문제죠. 정부는 변하지 않아요. 언제나 같은 건물 안에서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서류를 만들어 내죠. 하지만 우리들은 말이죠, 8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매번 달라져요." (150)


우리는 누구나 신념과 희망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간직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국 관념에 불과하다. 역사는 모든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행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생각하고 믿음을 갖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부질없는 일이며, 중요한 것은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327)


역사는 우리가 아직 갖지 못한 기억이다. 그것은 오만과 몰락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우리는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것과 다른 결과를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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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쇼핑

저자
주디스 러바인 지음
출판사
좋은생각 | 2010-04-23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아무것도 사지 않은 1년간의 생생한 기록!1년간의 소비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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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운명적으로(!) 동네 헌책방에서 만났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면서 덥석 집어들었다. '생활 필수품(물론 '생활 필수품'의 범위는 논쟁적이다) 외에는 1년 동안 아무 것도 사지 않는' 이야기의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하다니 이런 멋진 우연이 다 있나. 

물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름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한 것보다는 감동이 덜하다. 솔직히 말해, 저널리스트인 동시에 활발한 정치적 활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그와 파트너의 '쇼핑 안 하는' 이야기가 나에게 마음 깊숙히 와닿지 않았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원 낭비적인 자본주의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에 대한 비판과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선망보다 이 허무한 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좀 더 사적이고 소박한 후일담이었다.


2004년 3월 7일 까페가 그립다

와인이나 커피를 소비하지 않게 되면서 인간 관계의 윤활유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푸념. 호오.

까페라는 것은 도시에서 그 어느 것도 대신 줄 수 없는 즐거움―일하기, 먹기, 읽기, 몽상하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기―을 제공하는 도시의 독보적인 문화시설이다. 즉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무얼 하는지는 볼 수 있는 공공의 사적 공간이다. 길거리에서 사람을 힐긋 쳐다보거나 술집에서 낯선 사람한테 속내를 털어놓거나 혹은 밀실에서 섹스를 하거나, 도시에서 익명의 친교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친근한 타인들 사이에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는 것은 안전하면서도 고독하다. 술집에서의 섹스와 비교하면 불감증 수준이다. 폴은 특별히 이런 주흥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도시 출신이 아닌 그는 집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시골 관습을 도시로 옮겨온 것에 반가워했다. 하지만 나는 벽쪽의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과 어울리며 커피를 홀짝거릴 그날이 다시 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93-94)


4월 29일 자발적 가난의 문제점

내가 채식을 시도하면서 느꼈던 의문과 비슷하다. 개인적인 해결책은 영향력의 범위도 개인적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개인적인 것과 경제적 · 사회적인 것을 따로 떼어놓고 싶지도 후자가 실질적인 반면 전자는 하찮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이 두 가지 영역을 통합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를 포함해서 내가 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의 소비를 줄이는 것이 내 기분을 풀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다. 사지 않는 것이 해결책의 하나이긴 할까? 근데 무엇의 해결책이란 말인가? (132)


4월 30일 욕망할 수 있는 자유

저자가 이야기하는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용어로 바꾸어 읽으면 좀 더 재미있어 진다. 

나의 일부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권리가 있다는 듯이 여기는 미국인들에게 넌더리를 낸다. 동시에 나는 좌익이든 우익이든 우선 사람들에게 욕구하지 말라는 말부터 하는 그런 운동에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동참하기 싫다. 나는 그 신발가게의 그 여자아이들에게 그런 하찮은 구두를 원하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밤새 춤을 추고픈 그들의 섹시한 꿈을 포기하라고 감히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꿈은 구두의 밑창에 그리고 영혼에 한 땀 한 땀 수놓여 있다. (137)


9월 27일 아고라에서 오이코스로

이제 우리는 안보를 위한 소비라는 또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백악관과 가정용품 매장의 세일즈맨들은 실제의 테러와 조작된 테러에 대한 환상으로 우리의 구매를 부추긴다. 제대로 된 물건을 갖춰놓기만 하면 우리는 어떤 불확실과 혼란이 닥쳐와도 끄덕없다. 모두 손실보장이 되어 있다.

물건의 구입을 통해 안위를 보장받으려는 안일한 태도는 그만큼 위험에 취약해지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쇼핑을 안 하는 것은 역설적인 효과를 낳는다. 양말과 양념의 재고가 바닥나고 한계를 유보해주던 완충물이 사라지면서, 나는 필요한 것은 이미 전부 갖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사실은 두려움을 증폭시키기보다는 덜어준다. 미래에 대한 나의 청사진에다 지난 9개월 동안 확연히 겪었던 친구들의 친절을 더하고 새로 산 물건을 제하여 보라. 그러면 요새의 두께는 상당히 줄어든다. 올 들어 더 적게 가진 나는 지난 10년 세월보다 재정적으로 더 안정감을 느낀다. (279)


11월 28일 사유재산

오. 그렇군. 소유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겠구나. 그 생각을 못 해봤네. 

마르크스는 말했다. "사유재산 때문에 멍청하고 둔감해진 인간들은 물건을 소유할 때만 비로소 자기 것이라고 여긴다. 모든 육체적, 지적 감각은 소유의식에 모든 자리를 쉽게 내주었다." (339-340)


다 읽고나서 보니 미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빌 브라이슨의 애정과 조롱이 (함께) 넘치는 에세이들이 묘하게 겹친다. 미국 문화의 근원적인 가치를 파헤쳐 비판하는 동시에 '꿈의 나라'인 미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 또한 숨기지 않는, 그래서 자신의 국가가 가질 찬란한 미래에 대해 한 치의 의심없이 확신하는 태도가 공통적이다. 그래서 비미국시민 독자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건가. 흠.





Posted by 소년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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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는 이제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구요. 왜냐하면 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마니아거나 평론가들이 영화를 즐기면서 영화를 사랑하게 된 게 아니라 평론가가 되기 위해서 영화를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도 모르면서 라캉만 공부한 애들이죠. 이게 직업이 되어버린 거에요. 요즘 국문과에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사람들이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얘기도 안 해요. 국문과 4학년 중 박완서 읽은 애들이 아무도 없어요. 그게 이를테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현실이에요. 생산은 이제 무엇보다 쉬워졌어요. …… 그런데 얘네들 자체가 영화나 문화를 즐기지 않는다는 거에요. 이를테면 먹기부터 시작하지 않고, 뱉기부터 한다는 거죠. …… 요즘 젊은 친구들에 대해서 제가 감히 얘기를 하면 결국에는 폭식을 하듯 다양한 선배들의 작품을 먹어야 되는데, 먹지 않고 표현부터 하다보니까 변화가 없는거죠.


변영주 감독,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 지승호, <감독, 열정을 말하다>

Posted by 소년망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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